센터 활동 소식

발달장애인 부모와 사회적경제가 일구는 지역돌봄

사회적경제 학습동아리에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조니 뎁에게는 두 개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시절 출연한 영화에서 장애인의 가족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그 영화들은 각각 <레인 맨><길버트 그레이프>이다.

 

다만 <레인 맨>은 전 세계 인구를 통틀어 봐도 100여 명 남짓할 것으로 추정되는 서번트 증후군환자가 주인공이며, 사뭇 헐리웃스러운설정과 사건들을 기반으로 영화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실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삶과는 여러모로 차이점이 많다. 반면 <길버트 그레이프>는 거의 20년 동안 지적장애인을 돌보며 점점 지쳐가고 날카로워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은, 우리의 현실에 더욱 가까운 영화라 할 수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약 2586천 명이다. 이 가운데 지적장애인의 수는 207천여 명, 자폐성 장애인의 수는 26천여 명이다. 지적장애는 선천적인 원인으로 지능지수(IQ)70 이하인 상태를 가리키는데, 자폐성 장애의 경우에는 지적장애를 함께 갖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두 가지의 장애유형을 흔히 발달장애로 통칭한다. 따라서 한국 내 발달장애인의 수는 233천 명으로 집계할 수 있다. 거의 금천구(242천여 명) 인구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가족의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지난 9월부터 동대문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이하 동사경센터)사회적경제 학습동아리프로젝트 중 지역돌봄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현재, 그리고 사회적경제의 영역에서 그려보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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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홍구 기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동대문지부 소속 한동숙 활동가, 박서연 활동가

 

너희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 공부한다

 

동사경센터의 사회적경제 학습동아리는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경제 사업모형을 동대문구민들이 함께 모여 학습하며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올해에는 사회주택, 사회혁신창업, 지역에서의 돌봄사업, 그리고 기타 분야에 대한 자율적인 논의 및 신청 등 크게 네 가지 주제에 따라 자체적인 스터디, 전문가 초빙, 현장답사 등을 통해서 새로운 방안을 함께 상상하고 준비한 참여자들이 사회적경제의 주체로 성장했다.

 

그 중에서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의 어머니인 한동숙 활동가, 스물네 살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의 어머니인 박서연 활동가는 지역돌봄을 주제로 학습동아리를 만들었다.

 

동대문구 안에서 저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뭐가 있나, 새로 살펴볼 게 있나 항상 확인해왔어요. 그러던 와중에 구청 홈페이지에서 학습동아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했죠. 마침 저희랑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더 모여서 결국 다섯 명이 함께 학습동아리를 만들게 되었어요(한동숙).”

 

제 아들은 지난 5월까지 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4년제 자립대학을 다녔어요. 그리고 6월부터는 한국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서울센터에서 동료 지원가로 활동을 시작했죠. 자기들이 직접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무서워하거나 무시하지는 말아주세요’, ‘이해를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대견해요. 그런데 비록 단시간 근무이긴 하지만 아이가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니 저도, 아이도 자립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커지더라고요. 여기에 필요한 지식과 사례들을 배우기 위해서 학습동아리에 참여하게 됐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하게 되니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카테고리가 인생에 생기더라고요(박서연).”

 

지역돌봄을 주제로 만들어진 모임이기는 하지만, 사회주택과 사회혁신창업 분야도 이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주제는 아니다. 발달장애인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서는 주거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발달장애인들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와 패턴을 가진 경제활동 방식 및 구조가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요인들은 비단 발달장애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장애유형들에 비해서 발달장애는, 특히 자폐성 장애의 경우에는 비장애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매우 어려우므로 일반적인 회사 생활을 통한 경제활동에 적응하는 것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직업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활동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을 만드는 중심축이잖아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회의 일반적인, 실적 중심의 경쟁구도에 적응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겨우 일을 시작해도 한 달 만에 쫓겨나는 경우가 많죠(박서연).”

 

 

지체장애인들이나 뇌 병변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거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직접 나서서 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발달장애인들도 조금씩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부모들이 더 열심히 해야 돼요. 인지 능력이나 의사표현능력이 떨어지니 부모가 대변인역할을 하는 거죠. 문제는가끔 부모들도 아이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바뀌지 않는 자연인이에요. 하나를 가르치고 익히는 데 몇 년이 걸려요. 우리는 바뀔 수 있는 사회인이니까 우리가 더 노력해야죠(한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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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숙 활동가(왼쪽), 박서연 활동가(오른쪽)

 

불모지에서 살아간다는 것

 

매일, 매주 치열하게 몰입했던 학습의 과정 속에서 이들은 다시 한 번 현재의 여러 제약점들, 미비점들을 절감해야만 했다. 이에 대해 한동숙 활동가는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의 질이나 종류 면에서 한국은 불모지에 가깝고, 특히 동대문구는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라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필자는 그러한 불모지에서 20여 년을 지적장애인의 어머니로 살아오며 겪은 어려움, 아픔, 막막함 등을 차마 가늠해볼 수도 없었다.

 

이제는 고등학교도 의무교육대상이 됐지만,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급이 없거나 인원이 포화상태인 중고등학교에는 진학이 거의 불가능해요. 그래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한마음으로 원하는 시설이 특수학교인 거죠. 하지만 동대문구에는 없어서 다른 지역의 학교를 찾아봐야 해요.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자립대학이나 평생학습관을 다니게 되는데, 구립 평생학습관 같은 경우는 서울시의 25개 자치구 중에서 스무 곳에 만들어져 있어요. 하지만 동대문구는 평생학습관이 없는 다섯 자치구 중 하나죠. 장애인 체육시설도 물론 없고요. 사실 동대문구의 복지정책이나 예산은 거의 노인복지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장애인 관련 지원이나 서비스 자체가 많이 부족해요(한동숙).”

 

한동숙 활동가가 언급한 몇 가지 시설들 중에서 한국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의 불모지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특수학교이다. 교육부의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2018년 당시 한국의 특수교육대상자 수는 9780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10년 전의 71,484명과 비교해보면 2만 명 가까이 증가한 수치이다. 하지만 그동안 특수학교의 수는 겨우 26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여러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수는 매년 4% 가까이 증가했는데, 2018년 당시 특수학교 및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29.0%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문제가 어떤 풍경을 만들어냈는지 잘 알고 있다. 지난 20179월에 언론과 SNS를 뒤흔들었던 사회적 이슈, 바로 강서구 서진학교설립을 위해 열렸던 주민설명회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격렬하게 반대하던 주민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하던 장애아동 부모들. 그 풍경 속에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해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자신들의 자산에 악영향을 주는 어떤 요인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자산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가 충돌한 현장이었던 동시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 현장은 바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었다.

 

 

한 해 동안 무릎 꿇고, 삭발하고, 삼보일배도 했죠. 하지만 언제까지 생각만, 농성만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아이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더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해야 돼요. 몸은 건강하니까 우리보다 더 오래 살 텐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줘야죠(한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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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우리들의 협동조합을 그리다

 

그동안 두 활동가가 속한 학습동아리는 발달장애 자체는 물론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경제 모델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학습했다. 그래서 지난 4개월 동안 이들은 한국 전체, 서울과 동대문구 등의 다양한 사례와 현황 조사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의 발달장애인 주거 서비스, 직업재활 분야, 여가생활 양상 등을 살펴보고 이를 한국의 현실에 맞는 모델로도 재구성해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사경센터는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경제 영역의 다양한 경제활동형태, 수익창출모델 등에 대한 조언과 정보 등을 지원했다.

 

학습동아리를 시작하고서도 사회적경제라는 게 뭔지 이해를 못했죠. 이름만 듣고 사회주의 경제인가? 그럼 공산주의 경제인가? 이렇게 생각했을 정도니까요(웃음). 그런데 동사경센터에 처음 와서 받았던 리플릿, 백서 등을 보니 사회적경제는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 구절이 정말 너무 좋았고, 그제야 사회적경제가 어떤 것인지 이해되기 시작했죠. 발달장애인들에게 가장 좋은 거주방식은 공동가정인데, 이게 사회적경제 분야로 치면 협동조합이에요. 그래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의 협동조합까지 떠올리게 된 거죠(한동숙).”

 

한동숙 활동가의 말처럼 이제 이들은 협동조합, 그리고 마을기업의 설립을 꿈꾸고 있다. 기계로 만든 특정제품을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포장하고 판매하는 사업이다. 초기투자비용은 서로 나눠서 부담하고, 전문인력의 도움이 필요한 판로 개척과 마케팅 등은 사회혁신창업 분야의 청년기업 또는 스타트업들과 협력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동사경센터나 여러 장애인복지시설 등에 흩어진 정보와 자원을 모으고 활용하는 일,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이라는 목적을 위한 협업과 공유를 이끌어내는 일은 부모들의 몫이다. 물론 그들은 기꺼이, 열심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업을 완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여기저기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하지만 아이가 밖에 나가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매일, 매 순간 긴장하고 걱정했죠. 나중에야 알았어요. 발달장애인들은 익숙한 장소에서 자주 본 사람들과 지내는 게 가장 좋다는 걸. 그래서 여기, 동대문구에서 부모 사후에도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게 해주고 싶어요(박서연).”

 

사회적경제를 알게 된 이후로 마치 신세계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동사경센터가 있다는 게 정말 좋고요.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아서 다른 부모들한테도 같이 하자고, 센터에서 만나자고 부르는 중이랍니다(한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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